Monday, July 29, 2013

지진에 대해 기독교인의 반응은...

조용기 목사의 일본 지진 관련 발언이 많은 논란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관련 포스트 http://jinny1497.blog.me/90109097036 )

지진에 대한 기독교인의 반응과 관련되어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은 지난 아이티 대지진때
미국의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 목사의 부두교 발언이었죠...

팻 로버트슨의 발언은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가져왔던 사례 중 하나입니다.

적어도 이런 논란을 한국 개신교 목사들이 유념하고 있었더라면,
이번과 같은 논란은 미연에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번 조용기 목사의 발언으로 인해
다시한번 한국 개신교가 비난의 대상이 된 것 같습니다.
(이것외에도 비난받고 자성할 부분도 참 많은데, 비난 거리만 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그러나,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밝혔듯이 자연재해를 신의 경고로 이해하는 근본주의적 세계관이 있는가 하면,
자연재해를 신의 경고로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도 있습니다.
오히려 후자가 더 바람직한 기독교인의 접근 방법이라고 봅니다.

2010년 1월, 국민일보에서는 <재난에 대한 기독인들의 마음가짐. 죄의 결과라는 해석은 금물>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김상복 목사의 발언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이번 지진은 하나의 자연 법칙에 따른 결과로 개인과 국가가 자행한 죄의 대가는 아니다”면서 “이런 때일수록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고통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며 자연 법칙도 그 중의 하나”라면서 “제한된 인간이 무제한적인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기란 사실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통 가운데서도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결국은 펼쳐진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사문 중 일부 발췌. 원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394811)
원인모를 고통에 처했을 때, 우리는 고통의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을 알아야 질병이 치료할 수 있듯이,
고통의 원인을 알아야만 고통이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때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통에 대한 자세입니다. 

고통이 자신의 것이라면, 인간은 종교를 통해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극복해 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종교>가 인간의 고통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은 종교학에서 종교를 이해하는 중요한 설명 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신의 경고나 진노로 해석하고, 결과적으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고통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번 일본 지진과 같이 고통의 당사자가 내가 아닌 타인일 경우에,
그 고통의 원인에 대해 자기자신의 해석을 내리는 것은 기독교인이나 종교인으로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이 경우 필요한 것은 고통에 대한 참여, 즉 고통받는 이가 고통으로부터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미 쏟아진 물을 담을 수 없듯이,
조용기 목사의 발언도 되돌리 수는 없습니다.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또한, 이것에 대해 잘잘못을 따진다고 해서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반면 친일파 문제나 故 장자연 사건과 같은 경우는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문제이지요..)

지금의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어떻게 일본인들의 고통에 우리가 참여하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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